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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선과 질문을 안기는 인식 단어는 자연이 아니다. 누군가의 창조물이다. 나에게는 단어가 창조되었다는 인식이 참으로 소중하다. 거의 모든 단어를 당연하게 생각하던 나의 지적 게으름에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기 때문이다. 나아가 단어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제는 어떤 단어도 당연하지 않다. 동네마다 고장마다 그곳의 지명을 예사롭게 여기지도 않는다. 단어가 창조물이라는 인식은 때때로 물음도 안긴다. 성남시의 ‘분당’은 정치계도 아닌데 어떻게 저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 (이는 그리 어려운 물음이 아니다.) 문학과 철학 중 어느 쪽이 단어의 창조에 더 기여할까? (예상보다 여러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다른 지명들과 달리 왜 서울은 한자어가 없지? (이 물음 덕분에 ‘서울’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우리말 지명임을 알게 되었다. ‘서울’이란 지명의 기원을 공부하는 과정이 짜릿했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호기심이나 질문을 부르는 인식은 실로 고맙다. 열정적이거나 자발적인 물음이야말로 지식과 배움의 왕도일 테니까. 단어는 창조물이라는 인식은 그래서 소중하다. 아직 또 하나의 반가운 사실이 남았다. 단어는 시시한 창조품이 아니다. 놀라운 창작물이다. 단어들이 모인 언어의 세계는 바다처럼 심오하고 원대하다. 가히, 하나의 단어는 작은 우주다. 이를 깨닫고 난 후 새로운 믿음이 생겼다. 우리가 아는 단어만큼 우리의 세계가 넓어진다!
태초부터 존재하는 단어는 없다 “우리가 쓰는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어느 날, 지인에게 물었다. “사전에 모두 있잖아요.” “사전 속 단어를 만든 사람이 누구겠냐는 질문입니다.” “원래 있던 단어를 사전이 정리한 거 아녜요?” “처음부터 존재할 수가 없죠. 모든 단어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창작물일 테니까요. 만들어지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요. 우리말에서도 인터넷이라는 말은 20세기 이전엔 없던 단어잖아요.” “그러네요. 단어를 누가 만든 거죠?” 그렇다, 적잖은 사람들이 단어를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대한다. 비단 단어뿐일까. 사전에 대한 인식도 비슷하다. 옥스퍼드 사전 편집장, 존 심프신은 자신의 책 『단어 탐정』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전이 누군가가 쓴 책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나 자연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대체 누가 단어를 만드는 걸까?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OED)은 영어권에서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한다. OED가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어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단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어떤 연유로 뜻이 바뀌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가령,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이렇게 설명한다.
셰익스피어! 이 위대한 작가는 수많은 영어 단어를 만들었다. 험담의 의미를 담아 Gossip이란 말을 처음 썼다. 으스대면서 걷는다는 뜻의 Swagger, 기이하거나 섬뜩하다는 뜻의 Unearthly를 만든 이가 셰익스피어다. Hint, Excellent, Countless, Hurry, Lonely 등도 그의 창작물이다. 그의 창의성에서 빚어진 속담이나 관용구도 많다. 반짝이는 것이 다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Frailty, thy name is woman), 별로 달갑지 않은 위로(cold comfort) 등등.
작가들이 캐릭터나 이야기만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신조어도 만든다. 사상가이자 작가였던 키케로는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라틴어를 새로 만들었다. 영어권으로 건너가 인문학(humanities)의 어원이 된 바로 그 단어다. 프로그래밍 언어 중 가장 난해하다고 달려진 ‘말레볼제’라는 언어가 있다. 이는 단테의 『신곡』에서 온 단어다. “지옥에 말레볼제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지옥편 제18곡) 『신곡』을 옮긴 박상진 교수에 따르면, 말레볼제는 단테가 만든 단어로 ‘사악한 구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작가들이 만든 단어들 중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단어가 있는가 하면, 세월과 함께 사라지는 단어도 있을 테니까. 주목하고 싶은 사실은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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