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pch.or.kr/index.php?mid=sub2_5&document_srl=16105&listStyle=list
1 Users
0 Comments
3 Highlights
0 Notes
Tags
Top Highlights
아내 최영화가 2023년 5월 30일 월요일 새벽 평소 그렇게 좋아하던 봄비를 타고 주님의 부름을 받아 소천했습니다. 제가 사상교회 청년회 회장 때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회로 올라온 영화를 점찍고 공들인 다음 프로포즈를 할 때도 큰 비가 내렸습니다. 많은 말을 쏟아내었지만, 요지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나를 따라서 선교사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공들인 탓인지는 모르지만, 겁도 없이 ‘예’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말하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선교사로 나가야 나가는 거지 어떻게 알아’라고요.
그 이후로 아무런 대책 없이 신학대학 3학년 때 결혼하고 개척교회 2층 예배당이 붙은 두 평짜리 방, 베란다에 공동 부엌, 건너편 단란주점과 같이 사용하는 화장실, 여름이면 옥상에서 내려오는 습기에 방은 온통 곰팡이 그런 곳에서 지낼 때 그걸 당연하게 여기던 아내였습니다. 대학원 때 목사님이 두 분이나 돌아가셨던 교회의 사택으로 이사할 때 넓다고 마냥 좋아했던 아내, 그곳에서 옆집 목욕탕에 버려진 가구나 사과 상자로 뛰어난 재활용 제품을 만들어 교인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아내, 그냥 그것으로 교회 식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학원 3학년 2학기 삼랑진 천태산 아래 마을로 개척하러 갈 때도 그냥 그것이 당연한 듯했고 단칸방에 살면서 문, 창문, 천정 없는 농막 흙바닥에 돗자리 깔고 사과상자에 신문을 덮고 강단을 만들어 말씀을 선포할 때 한 살, 세 살 아이들을 둘러매고 ‘아멘’하며 저의 설교에 그렇게 은혜 받았던 아내,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선교원을 열어 삼랑진 읍내에서는 소문난 곳으로 만든 아내, 3여년의 세월에 나름 제법 많은 교인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긴급한 부름에 키르기즈스탄으로, 10여 년간의 일굼을 뒤로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할 때 잠시 ‘여보 꼭 가야 하나?’라는 한 마디, 그 뒤로 ‘쿨’하게 따라 나서서 또 다시 그 전쟁터와 같은 곳에서 꽃을 피우는 아내의 위엄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내 앞에서 잘난 체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시 키르기즈스탄으로 귀국 13년, 27년간의 선교사역에서 아내는 주로 한국어 교수로서 학생들을 끄는 묘한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그리고 사상교회로 부름 받아 지내온 3년간 아내는 사모라는 낯선 역할을 맡아 자리잡아가고 있었다가 화액 전에 급하게 부름 받았습니다. 최영화는 선교사, 사모로 불림 받는 것 보다는 그냥 ‘아내’ 그것도 정말 남편의 존경을 받을 아내라는 것, 그게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제게 분에 넘치는 아내 최영화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 같은 아내와 지난 37년을 한 몸으로 살도록 은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Glasp is a social web highlighter that people can highlight and organize quotes and thoughts from the web, and access other like-minded people’s learning.